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마모토 유타카 (문단 편집) == 평가 == 종합적으로 보면 [[순수문학]] 계열에 가까운 철학과를 전공하고 자부심 넘치는 일본 애니메이터가 자신과 상성이 맞지 않는 [[미소녀 동물원]]과 [[하렘물]]이 일본 애니업계에서 인기를 얻는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순수문학 계열의 메시지 위주로 일본 애니업계를 흥행시켜야 한다는 집착에 빠져 애니업계에 한몫하는 일원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스스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인은 나름대로 [[90년대]] 이후의 [[일본 애니메이션]] 전반에 대해서 일종의 회귀주의와 개혁관을 가지고 있는 모양. 대략 80년대 전후로 발생한 오타쿠 문화를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 전반을 좀먹는 편향적인 세태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독선적인 사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처신에 대한 충고를 해도, 비판과 반감에 취해 기행적인 망언을 일삼는다. 게다가 언행 목차에서 정리된 망언을 보면 본인의 취향에 맞는 [[메가존 23]]에 참여했던 전(前) 애니메이터의 팔로워 수를 자기보다 적은 300명이라고 비하하여 애초에 애니업계의 부흥은 안중에 없었고 자기보다 수준이 낮다 싶으면 타 애니메이터를 깎아내리는 위선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입증하였다. 이는 여론의 평가를 지나치게 신경쓰는 애니메이션 업계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찬반이 나뉠 수 있는 주제라고는 하지만, 야마칸은 자기한테 인기가 집중되지 않으면 타 업계인과 팬층을 진정한 애니메이션도 모르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비하하기 급급해하여 의도는 좋았다고 볼 수조차 없다. 모에풍도 싫다고 깎아내리고, 작가주의도 싫다고 깎아내리면, 도대체 주변 업계인들이 야마칸한테 뭘 어떻게 보답해줘야 하는 것인가? 제3의 길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현대미술처럼 개혁하겠답시고 파격적인 시도라도 해야 만족하는 것인가? 현대미술처럼 싹 갈아엎어 평론가층만 끌어모아도 본인이 만족하지 못하겠으니 업계는 썩었다고 억지를 부릴 가능성이 있는데 뭘 어떻게 해야 만족하는 것인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내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길은 본인의 능력이 아주 뛰어나거나 완전히 작가주의적인 예술 애니메이션 혹은 [[영화감독]]으로 돌아서는 방법이 있겠지만 이건 또 본인이 대중문화에 대한 미련이 강해 이도저도 못하는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2010년 이후에 내놓는 썰들을 보자면, 2000년대 초중반에 유행한 [[아즈마 히로키]] [[워너비]] 같은 인식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상은 강하지만 현실이 못 미치는, 안타까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앞으로 맡게 될 작품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질 여지는 너그럽게 보자면 존재한다. 그러나 그에게 순수문학 계열의 메시지를 일본 애니메이션 주류로 끌어들일 만한 잠재력이 있는지조차 의문인 것이, 그가 높게 평가하는 [[신카이 마코토]]는 [[작가주의]]와 대중성을 동시에 잡은 이상적인 일본 작가주의 애니메이터로 꼽히는데, 야마칸에게 그만한 포텐셜이 있었더라면 품행 문제가 있었어도 작가주의와 대중성을 확보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겠지만 현실에서는 그가 생각한 것과 정반대로 대중들에게도 애니업계에도 업계 판도를 흔들 정도의 평가를 받은 적이 없었다. 게다가 과연 순수문학계를 존경하는지도 의문점이 드는게 [[오사카예술대학]]이라는 일본 관서에서 명성이 높은 예술대를 졸업한 작가이자 [[무라카미 하루키]]를 주로 평론하는 저서를 지속적으로 집필한 평론가로 이름을 알린 도이 유타카(土居豊)가 야마모토의 작품 '트와일라잇'의 고증이 미흡하다고 평론했다는 이유로 듣보잡 취급 한 것도 모자라 게이새끼라고 돌려 욕하는 말까지 했다. 도이가 1967년생이라 야마모토보다 7살이나 많은 예술계 선배인데다 일제 군국주의를 비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본 망언에서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조잡한 후배 예술가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듣보잡 취급을 당해버린 것이다. 정황상 문화계 대선배에게 무례하게 대들어 찍힐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고 모르고 덤빈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가 주로 활동하는 애니업계를 포함한 미디어믹스 업계만이 아닌 문화계, 특히 영화계[* 오사카예술대학은 문화계에서 이름난 인재를 배출했으며 특히 영화계에서 그러하기 때문.]에서 스스로 발을 들이지 못하게 적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도이를 돌려서 깐답시고 게이새끼가 아니냐고 호모 같은 취미 없다고 조롱하는 바람에 스스로 [[호모포비아]]라는 걸 자백해버렸다. 이전부터 인지도 높은 영화평론가인 [[우타마루(래퍼)]]를 도를 넘은 피해망상으로 지속적으로 비방중상했는데 도이한테까지 저랬으니 영화계에 어느 정도 관심을 두고 있던 본인 입장에서만 큰 타격이다. 철학 전공자로서 순수문학계를 동경한다고 자부했기에 이름 높은 순수문학가에게 비판받은 것이 내심 타격이 컸는지 그냥 오타쿠에게 까일 땐 여유로워보이던 가면이 완전히 깨져서 고소하겠다고 극대노하는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덤이다. 본인도 이후 무언가 일이 잘못됐다 생각했는지 트위터 글은 지우지 않았지만 블로그 글에 걸어놓는 일은 없었다. 결국 도이 유타카를 모욕한 시점에서 타이하 코나미가 애니업계의 거물이 쓰는 가명이라는 것을 모르고 모욕한 비슷한 전례까지 있어, 그가 전공한 철학 이외의 다른 전공 지식을 모르는데다 지속적으로 알 생각조차 하지 않고 소홀히 하였다는 것이 증명되었을 뿐이다. 애니메이션 업계를 자기 자신이 떼돈을 버는 것을 과시하는 도구로 사용하려는 흑심을 품은 적이 있다고 본인이 밝히면서 지금까지 나름 애니메이션 업계를 걱정하는 모습조차 [[스노비즘]]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인 평가가 생겼다. 이는 [[https://ameblo.jp/kanku0901/entry-12583321421.html|야마칸 본인의 언급]]으로는 [[교토 애니메이션]] 시절부터 퇴사 이후에도 자기를 유일하게 걱정해준 스승인 [[키가미 요시지]]와 여전히 교류를 나누고 있어 왔는데, [[러키☆스타/애니메이션|러키☆스타]] 애니화로 떼돈을 벌어 비싼 차를 타며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행보를 보이다가 스승님한테 '그딴 걸 하기 위해서 이 업계에 들어온 거냐?'라고 한 소리를 들은 점에서 비롯되었다. 이 부분에서 열악한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상 애니 제작 자금을 횡령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많이 받는 편인데 애니메이션 감독은 애니메이터와 달리 대체 불가 인력이라 꽤 많은 페이를 받으며[* 그래서 의외로 외제차 타는 감독도 꽤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경우는 자동차 매니아라 차를 자주 바꾸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참고로 미야자키가 외제차를 처음 산 시절의 환율은 1달러가 350엔이었다. 지금이야 미야자키가 거장이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때 미야자키는 [[스튜디오 지브리]]를 만들기도 전이었고 인기 감독도 아니었다. [[스다 마사미]]는 [[포르쉐]]를 끌고 다니는 걸로 유명했다. 애니 업계는 연예계와 같아서 유명하고 능력있는 사람과 신인의 임금 격차가 굉장히 크다.] 유명 애니 감독이 좋은 차를 타는 건 금기시되지 않았으므로 횡령했을 가능성은 없다. 있었더라면 이미 대형사고로 번졌을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추구하던 방향은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변태 오타쿠의 포스트모더니즘화가 아니다'라고 업계 전설을 비하하면서 대체 이 사람이 회귀주의를 갖고 있다면서 왜 회귀주의의 중심이 될 만한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감독까지 비하하는 것인지 더 이상 제3자가 보기에 회귀주의와 모에 열풍을 동시에 부정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없게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나중에 변태 오타쿠 취급할 거였으면 왜 회귀주의를 가지다 부정하고 왜 모에 열풍을 부정한 건지 알 수가 없고, 처음부터 애니메이션의 부흥 따윈 진짜 목적이 아니고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인데 남한테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도 못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이전이 좋다면서 싫어하고 이후의 해체주의도 싫어하면 제3의 길을 걷겠다는 소리인데 어디서 어떻게 걸어서 애니메이션 업계인과 팬들을 설득하겠단 말인가? 좀 더 고찰해서 본인이 추구한다는 제3의 길을 상술한 영화감독적 성향에 근거한 리얼리즘 애니메이션만을 주류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라 어떻게든 억지로 이해해봐도 결국 애니메이션 업계의 주류 시청자층인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보는 아동과 소년만화 애니화를 기대하는 청소년들의 동심을 파괴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문화계와 예술계를 제외한 관점에서도 문제가 굉장히 많은데 예쁜 여자가 보인다 싶으면 성희롱을 너무나 자연스럽고도 추잡하게 일삼는 본성을 주체하지 못하기 때문에 [[AKB48 악수회 피습 사건]]에서 피해 여아이돌을 2차 가해 성희롱하고 조롱하다가 뒤늦게 [[인실좆]]될 위험을 느끼면서 삭제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타카는 자신이 오타쿠처럼 성희롱이나 일삼는 존재가 아니라고 항변하려고 불법적인 물귀신 작전까지 저지르면서 동귀어진할려고 오타쿠들의 욕설을 악용한 기획고소를 유도하고 있다. 이미 선입견, 편견, 악의적인 해석으로 실패했다고만 여겨질 단계를 넘어버린 것. 2019년에는 성 소수자 권리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호리에 타카후미]]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에게 주목하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뒤늦게 페미니즘 진영과 정치적 올바름 지지층에 참여한다고 해도 AKB 악수회 피습 사건 당시 피해 여아이돌에게 2차 가해 성희롱을 가한 전적이 있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데 대한 세간의 평은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가 감독을 맡아서 '''실적을 낸 작품이 거의 없다'''는 것이 첫 번째로 꼽힌다. 쿄애니를 나와서 직접 감독을 맡기 시작한 게 2008년부터인데도 작품 중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은 2020년 시점까지도 '''2008년'''에 나온 <[[칸나기/애니메이션|칸나기]]>가 유일하다. 아울러 작품 전반적으로 늘 말하는 '이상적인 작품'에 합당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여기에다 스스로 일으킨 수많은 트러블에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프랙탈]]>은 그 정도로 망할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스스로가 판 이런저런 무덤에 의해 상업적으로 대실패했고, 실적 부재와 언행으로 인한 악평이 악순환이 되었다. 그러면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 그 결과 본인의 한마디 한마디는 더욱 더 악의적인 해석이 더해지며 비웃음거리로 전락 → 맡은 작품에 안 좋은 선입견으로 작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후 이 쳇바퀴는 계속되었으며 이런 점들을 따지고 들면 [[야마모토 유타카/사건사고#s-3|'''감독의 영역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쫓아낸 [[교토 애니메이션]]의 판단은 당시에는 어쨌거나 대국적으로 옳았다는 의견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또한 친가로 보이는 건설회사가 야마칸을 바지사장 명의로 세워 사실상 회사돈으로 용돈을 줬다는 것이 밝혀지자 그동안 야마칸의 독선적인 행보에 의문이 완벽히 풀리기 시작했다.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친가 속에서 유복하게 자라 명문대 철학과를 졸업하는 등 온실 속의 화초로 자라난 몸만 어른이 된 아이가,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처음 자신보다 열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끼여 예상치 못한 일을 연달아 당하자, 인지부조화가 와서 귀족적으로 일을 해결하려다 애니업계의 제작진과 오타쿠들이 원하지 않는 결과를 낳는 실수를 반복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생각하는 것을 그만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사이 심리적 빈부격차를 극복해내지 못하고 오히려 덫에 걸려버린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이유로 유타카는 자신이 유복하게 자란 아이였다는 것을 의도치 않게 밝힌 시점에서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여 사회적 강자로서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전국민적 증오를 받게 되었다. 집안 사정만 잘 함구했더라면 잘난 척하는 괴팍한 명문대생 애니메이터 정도로만 남았을 것이 순식간에 암묵적인 사회적 명분이 걸린 대립 구도로 번질 수 있게 되었다. 문화계 바깥에서의 사회적 약자를 멸시하진 않으나, 문화계 내부의 상대적 사회적 약자인 오타쿠층을 사회에서 매장시키려는 행보가 대립 구도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칸나기 이후 야마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분노와 증오에만 취한 나머지 오타쿠 비판 주장에서 논리를 짤 생각조차 없어졌다는 것이다. 오타쿠를 비판하려면 대중들을 설득할 논리가 필요하다. 야마칸은 그러한 논리가 전무하다. 논리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KADOKAWA]]처럼 진짜 대중문화의 병폐에 대해선 목소리를 내지 않는 [[강약약강]]의 행보를 보였다는 점에서 오타쿠 비판 학자로서의 품격이 애초에 없었고 떨어져 갔다. 그가 자기 주장의 논리를 뒷받침하고 강자에게도 강한 행보를 보였다면 설득력은 있는 독설가 정도로 달라졌을 것이나, 결과적으로 그가 택한 길은 그가 극도로 혐오하는 충성도 높은 팬과 비틀린 [[공의존]] 관계를 맺는 [[갈라파고스화]]였다. 이처럼 대중을 설득하지 못하는 지식인은 지식인으로서의 자격에 미달할 뿐이다. 지식인은 대중을 설득해 지식을 공존의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지식인이 분노와 증오에 빠져 대중을 분열시켜봤자 자가당착에 불과하다. 또한 야마모토 유타카가 철학가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일본의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했어야 했다. 그런데 사회 문제를 비판하긴커녕 철학가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의무에서 도망치고 약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할 뿐이다. 야마모토 유타카가 일본의 사회 문제를 비판해 위험을 감수하고 대서특필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